'결혼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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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에세이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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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웃기지만, 외모면 외모, 집안이면 집안, 뭐하나 꿀리지 않는 전 평생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연애도 가볍고 짧은 연애만 계속 해왔고요. 그렇게 지내길 몇년, 이제는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잔뜩 들더라고요. 이제는 즐기기만 하는 연애가 아니라 내 미래를 안정적으로 믿고 맡길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죠. 

수없이 많은 연애 경험이 있었기에, 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도는 금방 캐치할 수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지금 현재의 소비패턴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곱게 자란 제가 집안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또 이사람 저사람 만나기를 몇번.. 하지만 진짜 '이사람이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뿐더러, 그냥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더라고요.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도 아닌데, 정착하고 싶단 생각을 한 것부터가 잘못된거긴 하지만, 만나는 남자들마다 각각 장점은 있지만 눈에 차질 않았어요. 제가 인생을 너무 가볍게만 살았던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후회가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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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pixabay]

그러다가 머리좀 식힐 겸 친구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평소같았으면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마시고 춤추고 놀았을텐데, 영 기분이 나질 않더군요. 그래서 구석에 씁쓸히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제 옆에서 조용히 호흡을 맞춰주는 한 남자가 있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의아했는데, 친구의 친구라고 처음 모였을 때 소개 받은 게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그 남자와 같이 잔을 기울이게 되었는데요. 

뭔가 부드럽고 잔잔한 미소에 차분한 말투가 점점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날 참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이렇게 처음 본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가까운 친구에게도 잘 하지 않던 이야기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그 사람이 주말마다 유기견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며, 이번 주말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술김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도 했죠. 

주말 아침,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받으니 그 남자. 유기견센터 주소를 문자로 찍어줄테니 잘 찾아오라며 전화를 끊더군요. 약속도 잊고 있었을 뿐더러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찾아오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 대충 준비를 하고 센터로 향했어요. 

앞서 이야기 했지만, 저는 집안일에도 손하나 까딱 안해보고 컸는데, 유기견 센터 봉사는 말도 안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수 백마리의 강아지들을 씻기고, 집을 닦고, 밥을 주고.. 운동하는 것보다 체력이 훨씬 빨리 닳더라고요. 힘들어 주저 앉으니 조용히 물을 내밀던 그 남자. 어이가 없기도 했는데요. 한참 일을 하다보니 뉘엇뉘엇 노을이 지더라고요. 그제야 다가와 "어때요? 힘들죠?"묻는 그 남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건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더군요. 

그 남자는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고도 바르게 자라왔는데요. 제가 원하던 돈이나 명예, 그리고 약간의 허세와 가벼운 재미는 없었지만, 지금껏 볼 수 없던 건강함, 바름, 배려, 그리고 됨됨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몇 날 며칠을 쫓아다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결국 이 사람을 쟁취했어요! 역시 제 감이 맞았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요, 함께 있는 시간에 허전함이란 느껴지지가 않았어요. 그에게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요, 함께 봉사도 다니고, 숲길도 거닐며 얼마나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는지 몰라요. 

몇 달 후, 프로포즈도 제가 했습니다! 정성껏 쓴 편지와 나와 평생을 함께 해달라는 징표인 반지까지 준비해서 말이죠. 

저희 부모님도 참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고 그만 보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의 시부모님도 그를 이토록 바르게 키워주신 분들이셨기에 기대대로였고요. 제게 늘 고맙다고 하시는 시부모님! 오히려 감사할건 전데 말이에요. 

그렇게 저희는 결혼한 지 3년 차입니다. 그와 함께 하는 일은 뭐든 힘들지가 않아요. 집안일도 함께 하고 쉬기도 함께 쉬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참! 저는 그와 조금 더 오래 신혼 생활을 즐기고 싶었는데요, 얼마 전 아기가 들어섰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어요. 아직은 초기라 무리하면 안되지만, 앞으로 쑥쑥 자라날 우리 아가와 저, 그리고 제 남편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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