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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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에세이

운명의 빨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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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던 레지던트 시절 제 유일한 낙은 인터넷이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타고 친구들의 일상을 구경하고 대리만족 하는 게 재미였지요. 하루는 한 친구의 타임라인에 올라온 동창회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 중에 눈에 띄게 아름다운 분이 계시더라고요. 환하게 웃고있는 모습이 정말정말 예뻤습니다.  

꿀처럼 달콤한 휴식시간이 끝나고 바쁜 병원 업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 분이 아른아른 떠오르더라고요. 그 환한 미소가 머리에 각인되었나봐요. 고민을 하다가 일과가 끝난 후 친구에게 바로 연락했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페이스북 사진에서 그녀를 보았는데, 혹시 애인이 있냐고 물었어요. 친구는 곧바로 안그래도 지난번 만날 때 그녀가 소개팅 좀 시켜달라고 졸랐었다며, 만나보겠냐 묻는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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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pixabay]

그토록 예쁜 그녀에게 애인이 없다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요! 바로 만나보겠다고 연락을 주고, 친구의 빠른 주선으로 서로 연락처도 교환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 신분은 레지던트..만날 약속을 정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죠. 제가 오프인 날은 그녀에게 다른 일정이 있고, 그녀가 되는 날엔 제가 쉽게 시간이 나질 않더라고요. 보통은 소개를 받은 사이에선 이정도로 만나기 어렵다면 소홀해지고 염치상 연락을 끊기 십상인데, 그녀만큼은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조금 한가해질 때까지 꼭 기다려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지요. 

처음 연락을 한지 한달정도 지난 후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당직근무 시간까지 바꿔가며 그녀를 만나기로 했지요. 그녀를 닮은 꽃을 사서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나타나질 않는 것입니다. 연락을 해도 받질 않고요.. 

한 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결국 터덜터덜 당직 근무를 서기 위해 병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왜 그녀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을까 오만 생각이 다 들더군요. 한편으론 실망스럽기도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던 찰나 응급실에 한 여성분이 급성 맹장염으로 실려들어왔습니다. 

급히 달려가 치료를 하려는데, 실려온 그 여성은 바로 그녀가 아니겠어요?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생각하며 그녀의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첫 만남이었지요. 그녀를 만나서 전달하고자 했던 꽃다발은 그녀의 병실 옆에 꽂혔고요, 저희는 병원 데이트를 시작했어요. 그녀는 사진 속 환한 웃음처럼 정말 티없이 밝고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당시 서로 알기도 전에 맹장같은 절대 다른 사람에겐 보여주지도 않을 부위를 보여줘 부끄러웠다며 귀여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만난 저희는 현재 결혼준비로 분주하답니다. 저도 전문의 자격증을 땄고, 그녀의 수술부위도 말끔하게 치유되었죠. 조금은 쌀쌀할 11월 저희 결혼식이 그 어느때보다도 아름답길 바라고 있습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정말 저희의 인연은 운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운명의 빨간 실이 실제로 존재할런지도 모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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