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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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에세이

사랑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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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이한 제 친구놈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 날은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였어요.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회가 있던 날이지요. 여자 친구들이 준비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허겁지겁 그 녀석이 들어왔습니다. 평소 급한 성격 탓에 약속 장소에도 미리미리 등장하던 녀석이 늦게 도착하자 다들 의아해했죠. 자리에 앉아서도 뭔가 얼빠진 사람처럼 계속 부시럭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친구들은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냐고, 왜그리 넋이 빠졌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한 여자한테 빠졌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음악가에 대한 동경이 있던 그 친구는 꼭 음악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몇번이나 이야기 했었는데요. 작은 음악회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여자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열성적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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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pixabay]

그 날 이후 그 녀석과 전 따로 만났습니다. 언제나 똑똑하고 계획적이던 녀석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요청을 하길래 거절할 수가 없었죠. 그 친구는 가방에서 두툼한 흰봉투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그 봉투가 돈이라고 생각한 저는 무슨 여자를 돈으로 꼬실 생각부터 하냐고 친구한테 버럭 화를 냈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환하게 웃으며 봉투를 열고 무언가를 꺼내더라고요. 봉투 안에 든 건 돈이 아니라 스케줄 표였어요. 

스케줄 표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정성도 보통 정성이 아니었죠. 몇 달치 본인의 스케줄과 그 여성분의 공연 스케줄이 가득했어요. 처음엔 이건 아니다 싶어 도와줄 수 없겠다고 거절했어요. 하지만 친구는 우선 이 사람을 만나 보고 이 사람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한번에 포기하겠다며 간곡히 부탁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난감했습니다. 첼리스트에게 반했다는 건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것 보단 조금 낫지만 팬심인건지 사랑인건지 확인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었어요. 우선 생각해보겠다고 이야기 하고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그 후로 며칠 내내 "사람은 일단 만나 보고싶다"는 친구의 말이 맴맴 돌더군요. 친구에게 연락을 해 여성분이 연주하는 날짜의 연주회 표를 구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공연 마치는 시간까지 기다렸어요. 잠시 후 연주자 분들이 삼삼오오 퇴근을 하시더군요. 그 첼리스트분도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셨습니다. 친구를 툭 밀었는데 잔뜩 얼어 꼼짝도 못하더군요. 그래서 대신 제가 그분께 다가가 인사를 했습니다. '연주 즐겁게 봤다, 친구가 그쪽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래 된 팬이다' 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흘렀지만, 곧 그 여성분이 살며시 웃으시는게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주위 동료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북돋았습니다. 친구는 용기내 다가가 오랫동안 팬이었다며, 준비한 꽃을 전달했습니다. 저와 주변 동료들이 분위기를 띄워서일까요. 두 사람은 연락처를 주고 받았고, 며칠 후 첫 데이트를 했습니다. 진도가 이렇게 쫙쫙 나갈줄은 몰랐는데요. 두 사람은 엄청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올해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날, 사랑의 결실을 맺었답니다. 

그 친구의 마음가짐이 철저했기에 가능했던 일일까요? 그 친구를 보며 인연은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 커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길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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