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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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에세이

먼 길 돌아 만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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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좋은 사람을 만나도 이 사람이 정말 내 짝일까 의심하면서 주저합니다. 조금 더 지나면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평생 짝꿍을 찾는 일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제 마음에 솔직했다면 먼 길 돌아갈 일도 없었을텐데 말이에요. 

대학원생이었던 저는 연애에 조금 미숙했습니다유별나게 수줍음도 많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어려웠어요. 이런 성격 때문에 공부에 더 몰두했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학교 집, 학교 집 만 왔다갔다 했을 뿐 특별히 왕래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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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pixabay]

하루는 이런 제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언니가 주변 사람 소개로 소개팅 일정을 쭉 잡아주는 게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싫다고 화도 내보고, 진지하게 말도 해봤지만, 언니는 인연이든 아니든 우선 만나보라며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미 만날 일정이 정해진 상황에서 나가지 않는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소개팅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 날은 비가 참 많이 내렸어요. 이런 일이 처음이라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하게 되었지요. 우산을 정리하고 문을 여는 데 뒤에서 어떤 남성분이 손을 뻗어 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고개로 까딱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잡으려 둘러 보는데 문을 열어주셨던 남성분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습니다. 

"000씨 맞으시죠?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오는 길 힘드시지 않을까 싶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약간 과하게 느껴지는 그의 배려가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민망해 웃음이 절로 나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자리에 앉자 부끄러움은 온대간대 사라졌습니다.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는 수줍음 많은 저와는 다르게 웃음도 크고 이야기 거리도 쉴새없었더랬죠.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하지 고민할 새도 없었습니다. 그와 함께 웃고 그의 이야기에 함께 휩쓸리다 보니 밖에 어둑해져있더라고요. 

많이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빈말이 아니더라고요. 정말 재미있어 머리가 찡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눈엔 제 반응이 뜨뜻미지근해 보였나봅니다. 그는 절 만난게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죠.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고 신나했는데도 시원시원한 반응이 없으니 말미엔 약간 시무룩해보이기도 했습니다. 

함께 있는 내내 편하고, 재미있고, 가슴이 조금씩 떨려오는 게 느껴졌지만, 제 맘을 고백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즐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가서도 연락도 하고 다음 만날 날을 정하기도 했지만 제가 너무 미숙했던걸까요? 

그는 결국 웃으며 "저는 00씨가 정말 좋은데, 00씨는 아닌가봐요. 그치만 00씨랑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는 싶어요. 우리 친구로라도 지내도 될까요? 부담 갖지는 마시고요" 라고 말했습니다. 제 맘을 읽지 못하는 그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표현을 하지 않았는걸요. 

이후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자꾸만 그가 떠올랐습니다. 책도 잘 읽히지 않고, 연구를 하려고 해도 집중이 안됐습니다. 밥을 먹어도 맛도 없고, 기운도 나질 않고요. 그 사이에 독불장군같은 언니는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아 제게 전해줬습니다. 많이 만나봐야 사람을 안다고 말이죠. 

두번째, 세번째 소개받은 남자를 만나봤지만, 오히려 그 남자 생각이 더 많이 났습니다. 억지 웃음을 지어야 할 일도 태반이었고, 시간도 잘 안갔습니다. 제가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동안 그 남자는 한결같았어요. 종종 전화를 걸어 힘을 줬고, 제가 연구실에 갇혀 연구에 몰두할 땐 도시락을 싸와 감동을 줬습니다. 

다른 사람은 더 못만나겠다고 언니에게 이야기 하며 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난다고요. 언니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데 억지로 참고 있으니 제 마음이 끙끙 앓는 거라며 당장 고백하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그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를 만나러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회사 앞에 서 있는 제 모습을 본 그는 눈이 점점 커지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모든게 미숙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나는 마음으로 그에게 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절 와락 끌어안던 그.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요?

올 10월 저희 결혼합니다. 

드레스 입은 제 모습에 물개 박수 치며 좋아라 하는 그를 보며 이런게 행복이지 싶습니다. 단번에 '저 사람이 내 사람이다'라고 확신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그보다 안쪽 깊숙히 숨겨진 제 마음을 고백하는 게 더욱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한 제 자신에 대해서도 용기를 얻어 요즘은 예전만큼 수줍어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어냈는데, 뭐가 더 두려우려고요. 

저희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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